반응형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책도 많을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웠던적은 왜일까?
전에 지하철에서 젊은 부부가 양쪽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는 가까스로 성공했는데 부인이 위암으로 생명이 서서히 꺼져갈때 두 부부의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접할때도 눈물이 나서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지하철에서는 이런 책은 피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의 이야기.사람사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더욱 가슴에 와 닿는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그네들도 그렇다고 말했지만 그런 모든것을 극복했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다.
돈도 없고,사람도 없고,변변한 특산물도 하나 없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깡촌이 발칵 뒤집혀진 그들의 감동 스토리.
대한민국 사람 열에 아홉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외딴 시골마을에서,축제 하나로
관람객 1,500만명에 2,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해낸 기적을 만든 전라남도 함평군.
그들에게 '나비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었다.남들은 기적이라는 쉬운말로 표현하지만 그들에게 습관처럼 몸에 베어버린 체념과 부정을 떨쳐낸 긴 투쟁의 시간들.
서로에게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며 하나의 비젼을 향해 달려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회사 직원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얼마전 TV프로그램에서 시골의사의 이야기가 나왔다.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24시간 진료를 하던 병원.
살기 위해 빚을 갚기 위해 처절했던 시골 병원의 성공은 결코 평범함이 아니었다 .
절절했기에 처절하도록 열심이었기에 그 의사도 지금의 부와 명예를 같이 안을 수 있었으리라!
1999년 제 1회 나비축제를 개최하고 ,2008년 나비엑스포를 열고 이제는 함평군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모든 농작물이 명품이 된 고장.
가을이면 명품국화축제가 열리는 고장.
그 절절한 그들의 뜨거움을 느끼고자 내년에는 꼭 그 현장을 가고 싶다.

(이 아침에 꼭 한번 이 책을 읽어 보시라고 감히 전해 드립니다)

동호회 및 회사에 실었던 글

반응형
Posted by 무림태풍
,
반응형

철도가 나에게 준 기억의 片

내게 있어 기차와의 인연은 아주 어릴적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남단의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에서

외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기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지금은 고속도로로 아주 교통이 편리하지만 내나이 00인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 등에 업혀 서울역에 도착해서 냉면을 먹다가 끊어지지 않던 냉면이 목구멍에 걸려 쾍쾍거렸던 것이 내

기억속의 기차여행의 첫 시발이었다.

유년시절 외가로 올라오는 기차여행은 정말 내겐 즐거움 그 자체였다.기차간에서 먹는 삶은 달걀은 그야말로 지금 아이들로 치면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그것은 아이스크림 케익과 같은 달콤함 뭐 그런 것 일것이다.봄이면 철길 주변에 핀 들꽃들과 주변 풍경이 정말 어릴적 토끼가 찧던 상상속의 달나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유년시절은 기차가 있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로

가득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행복한 유년시절을 뒤로 하고 성장한 뒤로는 서울에서 유학하면서 기차는 나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교통수단의 전부였다.

지금은 고속버스가 많이 활성화 되었다지만 기차는 중장년이 된 사람들에게는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는 교통수단이었다.

기차와 코스모스는 왜 그리 가슴을 저미게 하는지 어릴적 그

아름다운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코스모스에 가슴 아리는

마음을 지녀서 일까? 아무튼 기차가 달릴 때 철길 주변으로 요동치며 춤추는 코스모스 군무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리해지는 내 마음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코스모스와 기차는 가장 잘 어울리는것 같다.

군에 입대 하기전 강원도의 어느 병원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강원도로 가는 기차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설경은 그야말로 맑음 그 자체였다.순백의 아름다움 그것은 유년시절 내 자유스러웠던 꿈과도 같은 맑음이었던 것이다.

그 후 군에 입대하고 나서도 그 병원을 기차로 다녀온게 내 기억의 한조각이다.

기차와의 인연은 또 그렇게 잠시나마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남자에게 있어 군입대는 왜 그렇게 혹독한 아픔으로 다가 오는지 모를일이지만 누구나 사회와의 이별을 두려워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생경한 군대 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런 기억속에서 사귀던 여자와의 이별은 더 아픔을 주기는 당연지사인데 군에 입대전 시골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내려가던 날

서울역은 폭설로 눈이 엄청 오고 눈보라가 굉장했었다.

차창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눈보라 때문에 아련하게 보이며 이별을 하는 열차의 여운만이 내게 남겨졌다.

그렇다 그 시절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서울역에서

이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별만 했겠는가.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장소도

그런 기차가 매개 수단이며 기차역이 그런 장소였을테니 말이다.

그런 기차와의 인연은 신혼때도 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하던 곳이

기차길 주변이고 거기서 첫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인연의 연속이

되었다.그 다음 살림장소인 휘경동 주변에도 기차길이 있었다.

마치 기차길 주변으로 이사를 다니기라도 작정한 것처럼 이러한

인연은 계속되었다.

지금은 구리시 인창동에서 살고 있지만 현재의 중앙선 복선 전철

로 바뀌기전에는 경춘선이 아파트 바로 뒤로 지나는 곳이었는데

그것도 아파트 청약을 하여 당첨된 것이 그러하니 기차는 내게

참 숙명 같은 인연을 가진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어릴때의 동요처럼

기차길옆 전세방에서 새록새록 잠자던 큰아이는 지금 장성하여

군대에 입대하였다.

기차 그것은 내게 그런 추억을 생각하게 만드는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더 절절한 인연으로 내게 다가왔었던 것이다.

지금도 지방 출장이나 여행을 할때는 기차를 자주 애용하는데

그런 따스한 기억들이 내 기억 저편에서 나에게 손짓하기

때문이리라.언젠가 아이들이 어릴 때 영월 동강을 여행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동강이 수몰되느니 어떠느니 한참 야단인지라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게 좋겠다 싶어 기차로 여행을 하였는데

아이들도 그때의 여행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단양 구인사,소백산맥의 목장에 여행을 할때도 기차로 단양까지

갔는데 한적한 기차역이 마치 이국적인 느낌으로 와 닿았던 기억

이 있다.아내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던 기억이다.

기차는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의 매개체다.

그래서 기차길 주변에 코스모스와 과실나무를 철길 주변으로

심어 더 아름다운 기차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코스모스 피고 벚꽃이 피고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우리나라

기차길 …………….생각만 해도 흐뭇해진다.

아름다운 기차길, 아름다운 추억,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기차로부터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반응형
Posted by 무림태풍
,
반응형

2009.6.14 저녁 8시 PMC대학로자유극장에서 혼자 공연을 봤다.

모든 이들이 대학생들이 주다.여학생들이 많은것 같다.내 연령대는 혼자다

그래도 좋다.옛날을 회상하며 공연을 즐겁게 감상했다.

코엑스 3년 회원권 끊고 무료초대권 \40,000 티켓 받아 관람했다.

추억은 이래서 좋다. 옛일을 회상하면서...................



반응형
Posted by 무림태풍
,
반응형



반응형
Posted by 무림태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