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4년 2.15 보험회사 부속의원의 직원으로 입사해 1989년 대리 자격고시에 합격하고 1993년 과장으로 승진 1999년 차장 승진
그리고 2005년 부장으로 승진하였다.
2015.6월 정년을 앞두고 회사의 명예퇴직으로 2014년 1월 후배들을 위해 용단을 내렸다.
나의 직업은 방사선사였다.
처음에는 부속의원의 방사선사로 일하다 승진의 한계를 깨닫고 ,대리 고시를 준비하였고 전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의 부장으로
최종 연봉 1억8백만원을 받았다.최고의 직장생활이었다.
대리 승진 이후에는 검진센타를 총괄 관리하면서 보험 가입시의 진단서를 심사하는 전문인으로 성장하였다.
기술직에서 사무직으로 변신하는 나의 노력 덕분에 나는 전문대 출신이지만 부장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였고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마치고 이제 인생 2막의 직장 생활을 전공인 방사선사로 요양병원에서 다시 일하고 있다.
집에서 병원까지 지하철로 1시간 40분 소요시간은 2시간 하루 왕복 4시간 이상을 출퇴근하지만 면허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물론 정년을 마치고 새로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면허증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는 속담처럼 난 외가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보험회사도 병원도 모두 외삼촌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사촌 동생들이 병원을 운영하기 때문이다.고마운 일이다.
입사 100일이 훨씬 지난 지금은 제법 병원 생활에 적응해 있다.
암실에 환풍기도 달았고 방사선실에 공기 정화 식물로 환경도 바꾸고 입원해 있는 어르신들의 병실을 둘러 보기도 하는 여유도 가진다.
정이 많은 어르신들은 나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시는 모습에 짠한 감동을 받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운명을 달리 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저리기도 한다.
물론 인간이기에 지리한 냄새가 싫을 때도 있다.
우리 병원은 병실마다 간병사 분들이 애정으로 어르신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식사와 물리치료실 이동등 갖가지 일을 맡아 한다.
침술 치료 및 재활치료도 하기에 관내에서 인기가 많은 병원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화분의 식물들에 애정을 쏟는게 일과의 시작이다.
요즘 같은 날에는 부채도 부쳐 주고 잎의 상태를 확인한다.
요양병원이 궁금하시면 아래 댓글을 달아 문의하시면 살짝 알려 드릴 수도 있다.
우리 병원은 좋으니까 후~훗!
지금은 새순이 많이 올라 왔다.
금전수 라고 일명 돈나무다.
이 녀석은 3천원에 샀다.
나의 귀여운 애기 식물들
내가 근무하는 방사선실 .
테이블위의 보도 어르신들이 차갑지 않게 새로 만들었다.
물론 세탁실 아저씨의 도움이 컸다.
나만의 암실 공간의 문 뒷면에 이렇게 살림살이를 준비해 뒀다.
병원 전경
2개층을 쓴다.
병동3개에 물리치료 및 작업치료실,한방및재활치료까지 한다.
이건 최종 연봉 2013년 \108,025,875 명세서다.
그럼 공연담당기자는 뭐냐?
무보수다.보수가 있으면 미디어콜 등 기자 생활을 더 열심히 하겠지만 말이다.
생업이 중요하니 어쩔 수 없다.
'나의 캐릭터 > 인생2막 근무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양병원에서 어버이날 울게 될줄은... (0) | 2015.05.10 |
---|---|
나의 퇴근길 (0) | 2015.03.28 |
요양병원 근무하면서 가슴에 새겨야 할 시 한편 (0) | 2015.03.17 |
컴퓨터가 있는 세상 (0) | 2014.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