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만 했다.

그리고 아침 9시 근무시간부터 전 병실을 직원들과 돌며 입원중이신 어르신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사진 촬영을 했다.

선물도 준비했다.손 지압을 할 수 있는 도구다.

어버이날에 병원 직원들이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자 우시는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나도 울컥 한다.

 

 

 

 

 

**어느 양로원 병동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할머니의 소지품중 유품으로 단하나 남겨진 이 시가
양로원 간호원들에 의해 읽혀지면서..
간호원들의 가슴과 전세계 노인들을 울린 감동적인 글 입니다.

당신들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간호원 아가씨들.
제가 어떤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보면서
대체 무슨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성질머리도 괴팍하고
눈초리 마저도 흐리멍텅한 할망구 일테지요.
먹을때 칠칠치 못하게 음식을 흘리기나하고
당신들이 큰소리로 나에게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욧!!"
소리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할줄도 모르는것같고
늘 양말 한 짝과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쳐지는''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 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번만 제대로 바라봐 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넘기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 줄게요.

저는 열살짜리 어린 소녀였답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언니,동생들도 있지요.
저는 스무살의 꽃다운 신부랍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있는
아름다운 신부랍니다.
정다운 남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그러던 제가 어느새 스물다섯이되어
아이를 품에안고
포근한 안식처와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있답니다.
어느새 서른이 되고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고
제 품에만 안겨있지 않았답니다.
마흔살이 되니 아이들이 다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있어 아이들의 그리움으로
눈물로만 지새우지는 않는답니다.
쉰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위에
아가들이 앉아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
행복한 할머니 입니다.

암울한날이 다가오고 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갈 미래가
두려움에 저를 떨게하고 있네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젊은시절 내 자식들에 퍼부었던
그 사랑을 뚜렸이 난 기억 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 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 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처녀가 살고 있음을...
그리고 이따금씩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쿵쿵대기도 한다는것을..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날들의 아픔도 기억해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보고 싶어요.
지난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도 짧았고
너무도 빨리 가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때가 온것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봐 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보아주어요.
''의 참 모습을 말예요."

Posted by 무림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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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근무한지 1년이 되어 간다.처음에는 병실마다 나오는 소변과 대변 냄새

그리고 촬영할때 느끼는 질퍽한 느낌들이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참 안됐다.

저분들도 한때는 멋지게 인생을 향유했을텐데.....라고 느끼면서 등을 어루만지며

인사도 더 열심히 하던  이 시점에 밴드에서 친구가 올려놓은 이 글을 근무할때 지침으로

명심하고 새겨야겠다)

 

 

   

**어느 양로원 병동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할머니의 소지품중 유품으로 단하나 남겨진 이 시가
양로원 간호원들에 의해 읽혀지면서..
간호원들의 가슴과 전세계 노인들을 울린 감동적인 글 입니다.

 

 

 

 

 


당신들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간호원 아가씨들.
제가 어떤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보면서
대체 무슨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성질머리도 괴팍하고
눈초리 마저도 흐리멍텅한 할망구 일테지요.
먹을때 칠칠치 못하게 음식을 흘리기나하고
당신들이 큰소리로 나에게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욧!!"
소리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할줄도 모르는것같고
늘 양말 한 짝과 신발 한짝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쳐지는''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 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번만 제대로 바라봐 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넘기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 줄게요.

저는 열살짜리 어린 소녀였답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언니,동생들도 있지요.
저는 스무살의 꽃다운 신부랍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있는
아름다운 신부랍니다.
정다운 남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그러던 제가 어느새 스물다섯이되어
아이를 품에안고
포근한 안식처와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있답니다.
어느새 서른이 되고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고
제 품에만 안겨있지 않았답니다.
마흔살이 되니 아이들이 다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있어 아이들의 그리움으로
눈물로만 지새우지는 않는답니다.
쉰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위에
아가들이 앉아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
행복한 할머니 입니다.

암울한날이 다가오고 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갈 미래가
두려움에 저를 떨게하고 있네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젊은시절 내 자식들에 퍼부었던
그 사랑을 뚜렸이 난 기억 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 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 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처녀가 살고 있음을...
그리고 이따금씩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쿵쿵대기도 한다는것을..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날들의 아픔도 기억해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보고 싶어요.
지난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도 짧았고
너무도 빨리 가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때가 온것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봐 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보아주어요.
''의 참 모습을 말예요."

Posted by 무림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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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사한지 100일이 넘었다.

그동안 주 일터인 방사선실외에

주변의 배려로 다른 층에 컴퓨터와 자리가 생겨 너무 좋다.

오후에는 컴퓨터도 하고 말이다...

 

컴퓨터가 없는 세상은 참 따분하고 힘들다.

언제 부터인가 이 컴퓨터는 우리의 삶속에 깊숙히 들어와 이제는 안방을 독차지하고 눌러 앉았다. 

 

 

 

이 화분은 원래 있던 식물이 죽어 화원에서 1만원에 사서 사무실에 기념으로 두니 기분이 좋다.

Posted by 무림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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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4년 2.15 보험회사 부속의원의 직원으로 입사해 1989년 대리 자격고시에 합격하고 1993년 과장으로 승진 1999년 차장 승진

그리고 2005년 부장으로 승진하였다.

 

2015.6월 정년을 앞두고 회사의 명예퇴직으로 2014년 1월 후배들을 위해 용단을 내렸다.

나의 직업은 방사선사였다.

처음에는 부속의원의 방사선사로 일하다 승진의 한계를 깨닫고 ,대리 고시를 준비하였고 전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의 부장으로

최종 연봉 1억8백만원을 받았다.최고의 직장생활이었다.

대리 승진 이후에는 검진센타를 총괄 관리하면서 보험 가입시의 진단서를 심사하는 전문인으로 성장하였다.

기술직에서 사무직으로 변신하는 나의 노력 덕분에 나는 전문대 출신이지만 부장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였고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마치고 이제 인생 2막의 직장 생활을 전공인 방사선사로 요양병원에서 다시 일하고 있다.

집에서 병원까지 지하철로 1시간 40분 소요시간은 2시간 하루 왕복 4시간 이상을 출퇴근하지만 면허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물론 정년을 마치고 새로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면허증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는 속담처럼 난 외가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보험회사도 병원도 모두 외삼촌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사촌 동생들이 병원을 운영하기 때문이다.고마운 일이다.

입사 100일이 훨씬 지난 지금은 제법 병원 생활에 적응해 있다.

암실에 환풍기도 달았고 방사선실에 공기 정화 식물로 환경도 바꾸고 입원해 있는 어르신들의 병실을 둘러 보기도 하는 여유도 가진다.

정이 많은 어르신들은 나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시는 모습에 짠한 감동을 받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운명을 달리 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저리기도 한다.

물론 인간이기에 지리한 냄새가 싫을 때도 있다.

우리 병원은 병실마다 간병사 분들이 애정으로 어르신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식사와 물리치료실 이동등 갖가지 일을 맡아 한다.

침술 치료 및 재활치료도 하기에 관내에서 인기가 많은 병원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화분의 식물들에 애정을 쏟는게 일과의 시작이다.

요즘 같은 날에는 부채도 부쳐 주고 잎의 상태를 확인한다.

요양병원이 궁금하시면 아래 댓글을 달아 문의하시면 살짝 알려 드릴 수도 있다.

우리 병원은 좋으니까 후~훗!

 

 

 

 

지금은 새순이 많이 올라 왔다.

금전수 라고 일명 돈나무다.

 

 

 

이 녀석은 3천원에 샀다.

 

 

 

 

나의 귀여운 애기 식물들

 

 

내가 근무하는 방사선실 .

테이블위의 보도 어르신들이 차갑지 않게 새로 만들었다.

물론 세탁실 아저씨의 도움이 컸다.

 

 

 

나만의 암실 공간의 문 뒷면에 이렇게 살림살이를 준비해 뒀다.

 

 

 

병원 전경

2개층을 쓴다.

병동3개에 물리치료 및 작업치료실,한방및재활치료까지 한다. 

 

 

이건 최종 연봉 2013년 \108,025,875 명세서다.

그럼 공연담당기자는 뭐냐?

무보수다.보수가 있으면 미디어콜 등 기자 생활을 더 열심히 하겠지만 말이다.

생업이 중요하니 어쩔 수 없다.

 

 

 

Posted by 무림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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