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어둠과 빛의 연출로 경허선사의 발자취 잘 나타내,연극<경허>!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구한말 우리 불교의 최고봉으로 온 몸으로 중생을 끌어 안았던 경허선사의 발자취를 돌아 보는 공연이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나 2012년 ‘아름다운 영혼’ 이후 오랜만에 창작신작을 가지고 직접 배우로 연출까지 맡아 무대에 서는 강만홍의 무대를 볼 수 있는 자리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뉴욕타임즈에서 격찬한 배우 강만홍이 4년 만에 ‘경허’ 선사의 이야기를 가지고 무대로 돌아 온 것이다.    
강만홍의 작.연출 공연인 ‘경허’는 지난 2008년 뉴욕 맨하탄의 ‘라마마 극장’에서 격찬을 받았던 ‘길 없는 길’(The  Pathless Path)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대한민국 현대 불교계의 큰 스승으로 일컫는 ‘경허 선사’의 발자취를 중심으로 한다.

인간의 내면에서 울리는 자아의 울림과 공간의 머무름의 틀을 깨고 일탈의 문을 여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강만홍은 경허선사의 특별한 일대기를 ‘세미넌버벌’형식으로 꾸미고 있는데,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퍼포먼스를 다양한  음악과 함께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강만홍의 무대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공연이 시작되고 어둠속에서 일정시간 배우들의 공명으로 소리만이 들리는 도입부와 함께 성웅스님이 나레이터로 등장하고 강만홍이 경허선사로 나와 배우들과 함께 한다.
공연은 빛과 어둠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는 특별한 연출을 볼 수 있다.공연내내 배우들의 독창적인 안무가 두드러지고 어둠속에 서 구도의 길을 찾는 것처럼 어둠과 빛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퍼포먼스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90분 동안 배우들이 펼치는 앙상블과 퍼포먼스는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공연을 보고 나면 왜 뉴욕타임즈가 강만홍을 격찬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번 공연은 4월 20일 부터 5월1일까지 동국대이해랑예술극장에서 펼쳐지며 강만홍 외에도  성웅스님, 이란아, 김지애, 민우기, 박민수, 윤희경, 양승열, 고은결, 서봉원, 조백한, 김도연, 정민호, 조주현, 강민정, 홍지인, 고성현등 총 15명의 배우들이 함께 한다.

 

 

 

(포스터 이미지=극단 까망 / 창 크리에이티브 제공)

 

 

 

[시놉시스]

 

“홀연히 고삐 뚫을 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3천 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알았네
6월 연암산 아랫길에 일 없는 경허가 태평가를 부르네.“

 

@ 깨달음의 문

 

@ 깨우침

 

‘고삐 뚫을 구멍이 없는 소?’

거꾸로 서서 세상을
옆으로 누워서 세상을
바로 앉아서 세상을

 

@ 꿈결인가?

 

“내 마음을 찾으려면 몸뚱이는 송장처럼 알고 세상일 좋으나 좋지 않으나 다 꿈으로 알라.”

 

@ 바람


첫 번째 / 말(馬)
두 번째 / 꿈
세 번째 / 문둥이의 춤, 부처와 짐승놀이, 왕.거지.부처.악귀놀이 등
네 번째 / 천지간의 부처, 인생
다섯 번째 / 석녀
여섯 번째 / 불
일곱 번째 / 어리석음과 죄책감의 죽음
여덟 번째 / 일생, 여행
아홉번 번째 / 작별

 

 동국대이해랑예술극장  입구에는 연등 행렬이 즐비하다.

 

 

 (공연컨셉사진=극단 까망 /창 크리에이티브 제공)

 

 

 경허는 구한말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9세에 경기도 의왕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영민하였던 경허는 6척 장신에 기골이 장대하였으며, 1871년 약관 23세의 나이에 대강백이 되어 전국에 그 이름을 떨치었다. 그러나, 31세 되던 해, 예전의 스승 계허 스님을 찾아뵈러 길을 가던 도중,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 두려움을 맛보았다.
그리고 문자로는 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동학사로 되돌아와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에 구속되지

않겠다’며 문을 걸어 잠근 채 용맹정진 화두를 참구하였다.

경허선사는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그 한마디에 크게 깨우치고, 그 어디에도 걸림 없이 한판 삶을 펼치고 갔다. 생불이자, 가장 매력적인 무애행을 살다간 자연인 경허선사는 구한말 우리 불교의 중흥조이자, 한국 선맥의 최고봉으로  온 몸으로 중생의 바다에 뛰어들어, 성과 속의 경계에 묶이지 않고, 존재와 깨우침의 본 모습을 아무런 걸림 없이 대자유의 춤을 추었다.

문둥이도 전염병 환자도 끌어안으며 유불선을 넘어 온 누리에 선의 꽃을 피운 큰 스승이기도 하다.”

 

 

 

 

 

[출연 배우]

 

 

[티켓]

공 연 명:경허
일    정:2016년 4월20일 (수) ~ 5월 1일 (일) 
시    간:평일 20시, 토 15시 & 18시 , 일 15시 (월요일 공연 있음)
장    소:동국대이해랑예술극장
러닝타임:90분(인터미션 없음)
주    최:사단법인 경허연구소 
주    관:극단 까망
홍    보:창 크리에이티브
후    원:대한불교조계종 덕숭총림 수덕사
협    찬:불교신문, 불교방송,  BTN
관람연령:만 7세 이상 (미 취학 아동 입장불가)
티켓가격: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3만원
티켓예매:인터파크, 옥션티켓, 예스24, 클립서비스
출 연 진:강만홍, 성웅스님, 이란아, 김지애, 민우기, 박민수, 윤희경, 양승열, 고은결, 서봉원, 조백한, 김도연,
         정민호, 조주현, 강민정, 홍지인, 고성현
 스태프
■ 총감독 : 홍현지  ■ 극/안무/연출 : 강만홍   ■ 기획 : 창크리에이티브
■ 무대감독/조명오퍼 : 김양성  ■ 무대디자인 : 김광훈  ■ 음악 : 서범진
■ 분장감독 : 이수경  ■ 의상감독 : 나래  ■ 조연출 : 고은결
■ 영상/인쇄물 디자인 : 오은미  ■ 액팅코치 : 유현숙  ■ 사진 : 정상진

Posted by 무림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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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8.08.23 1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경허선사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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